난임 치료 과정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인 남편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미안함, 표현하지 못했던 진심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침묵 속에 함께 아파했던 그 사람에게, 이제야 전하고 싶은 마음을 기록했습니다.
📌 목차
나보다 더 조용히 아파하는 사람
나는 매일 주사를 맞고, 그는 매일 나를 안았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였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지 못한 진심
나보다 더 조용히 아파하는 사람
남편은 늘 조용했다. 시술이 실패한 날에도, 병원에서 의사 설명을 듣고 나오는 길에도, 그는 말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런 침묵이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까. 위로해 주지 않을까 하며 혼자만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혼자 아파하고 있었다. 실패한 날 밤, 내가 잠든 줄 알고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알았다. 그는 말 대신, 묵묵히 내 감정에 맞춰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자신이 아픈 걸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더 힘들게 하지 않으려 했다는 걸. 그도 매번 결과를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고, 같은 상처를 안고 있었던 거다. 그런 그가 더 안쓰럽고, 미안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기감정에만 몰두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그가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할 때마다, 사실은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의 조용함마저도 위로로 느껴진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당신도 많이 아팠지? 혼자 서운해하고 오해했던 거 정말 미안해."
나는 매일 주사를 맞고, 그는 매일 나를 안았다
난임 치료는 말 그대로 반복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배에 주사를 놓고,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진료 일정을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몸은 점점 예민해지고 멍든 자국은 늘어만 갔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항상 같은 말을 했다. “고생이 많네요.” 그리고 조용히 안아줬다.
처음에는 그냥 습관적인 말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날부터 그 말이 울컥하게 들렸다. 내가 주사를 맞는 동안, 그는 매일 나를 감정적으로 붙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리적인 고통은 내가 짊어졌지만, 그 모든 감정을 버틸 수 있게 해 준 건 그의 따뜻한 포옹 덕분이었다. 힘든 날일수록 그는 더 많이 웃어주려 했고 다정해졌다. 아픈 건 나뿐이 아니었다.
내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그는 외식하자며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갔고, 내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도 그저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렇게 남편은 나의 마음의 상처를 알아채고, 그 틈을 따뜻하게 메워주는 사람이었다. 그 모든 행동이, 말보다 깊은 위로였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내가 주사를 맞는 것보다 그가 매일 나를 격려하며 안아주는 일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나를 향한 사랑의 표시였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나 혼자 고생한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함께였다는 걸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다.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였다
사실 남편에게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마움’이 아니라 ‘미안함’이었다. 그가 해준 일들을 되돌아보면, 한결같은 배려와 사랑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다. 내가 시험관 시술을 받지 않았다면, 그도 이런 걱정과 긴장 없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나로 인해 병원에 자주 가야 하고, 매번 결과에 따라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며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멍든 배를 보여줄 때, 그는 차마 손도 대지 못한 채 “많이 아프겠다, 고생이 많네요”라고 말하며 조심스럽게 안아줬다. 그런 장면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미안함이 고마움을 앞섰다. 너무 고마워서, 그만큼 더 미안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정말 고마워”라고 말하면서도 눈물이 먼저 나왔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치료를 여기까지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밤, 내 기도가 바뀌었다.
‘제발 남편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해 주세요.’ 내 아픔보다, 그의 마음이 먼저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말하지 못한 진심
사실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당신 덕분에 버텼어”, “정말 고마워”, “나 때문에 미안해.” 그런데 정작 입 밖으로는 잘 나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꾹꾹 눌러 담기만 했다. 남편은 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 내 침묵도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그가 다 느끼고 있다는 걸. 가끔 그가 “그만하자”는 말 대신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라고 말할 때, 그건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주는 지지라는 걸.
내가 쓰러지지 않게, 기댈 곳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행복한 일인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다정함이 나를 더 아프게도 했다. 이렇게까지 헌신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도 “사랑해” 대신 “괜찮아”라는 말로 감정을 숨기고, “미안해” 대신 조용히 그의 손을 잡는다. 마음속에서는 수백 번 말했지만, 아직도 꺼내지 못한 진심. 언젠가는, 꼭 전하고 싶다. “정말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
그런데 오히려 남편은 항상 말한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