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은 출산 소식으로 가득하지만, 나는 여전히 준비 중입니다. 매일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버티는 난임 여성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 목차
주변은 출산, 나는 여전히 시험관 진행 중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치는 시간
축하해, 그 말이 가장 아팠다
언젠가는, 그 말로 버텨보는 하루
주변은 출산, 나는 여전히 시험관 진행 중
모임에 나가면 한 명은 임신 중이고, 또 한 명은 갓난아기를 안고 있다. 누군가는 유모차를 밀며 오고, 누군가는 태명이 적힌 초음파 사진을 자랑한다.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네지만, 속으로는 눈물이 맺힌다. 모두가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난자채취와 이식을 반복하며 병원에 다니고 있다.
먹는 약, 주사 스케줄을 체크하며 내 몸을 설득하는 삶. 그렇게 시간은 흐르는데, 내 삶은 여전히 ‘준비 중’이라는 딱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육아 이야기가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빠지고, 초대받지 않은 듯한 외로움이 마음을 덮는다. 나도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 자리에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험하다.
가끔은 내 존재가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지고, 괜히 미소 짓던 순간들이 허무해진다. ‘언젠가 좋은 소식 있겠지’라는 말은 이제 위로가 아니라 상투적인 인사처럼 들린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의 엄마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며 버텨가고 있다. 그런데도 주변의 출산 소식 앞에 나는 매번 작아진다.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는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치는 시간
난임 치료는 몸이 아픈 치료가 아니라, 마음이 지쳐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지퍼백에 날짜별로 주사 맞은 부위를 체크하고 양쪽배를 번갈아 가며 주사를 맞았었는데 이제는 대략 눈으로 봐서 주사 자국이 안 보이는 자리를 찾아 놓는다. 주사를 몇 번 맞았는지 이제 더 이상 세지 않는다. 복부에 멍이 드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더 약해진다.
이번엔 결과가 좋을까? 내일은 어떤 말을 듣게 될까? 그런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병원에서 임신반응 피검사만 하고 전화로 결과를 기다리는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은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고, 병원 전화번호가 찍힌 전화가 오는 순간 온몸의 신경이 수화기에 집중해 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과, ‘다음엔 잘 되겠지’라는 희망이 매번 부딪힌다. 이런 감정의 반복 속에서 내 마음은 무뎌지는 듯하다. 남편은 옆에서 애쓰고 있지만, 이 감정을 완전히 나눌 수는 없다. 이해해 주길 바라면서도, 괜히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말을 아낀다. 그래서 더 외롭다.
병원 대기실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표정이 모두 나처럼 지쳐 있고, 그걸 보면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시험관 치료는 단순히 의학적 절차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싸움이고, 끝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는 싸움이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마음은 내려앉는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씩씩하게 주사를 들고, 내일을 준비한다.
축하해, 그 말이 가장 아팠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카톡으로 온 초음파 사진, 웃으며 전해진 소식. ‘축하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까지 오래 걸렸다. 물론 진심이다. 정말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말을 뱉는 순간, 내 마음은 너무 쓰라렸다. 나는 아직 준비 중이고, 아직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는데, 누군가는 이미 새로운 생명을 만나고 있구나.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더딜까? 왜 이렇게 슬플까? 축하한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감정들이 나를 자책하게 만든다. ‘왜 나는 이렇게 속 좁을까’, ‘왜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할까’ 혼자 수없이 자문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감정을 감춰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
TV에서 나오는 연예인들의 시험관 준비부터 육아하는 과정을 소재로 한 이야기나, 특히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지인들이 벌써 둘째까지 출산해서 돌잔치 소식을 알려 올 때면 나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공허해진다. 그래서 나는 점점 피하게 된다. 타인의 기쁨 앞에서 슬퍼지는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더 이상 어떤 말도 꺼내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다. 단지 나의 아픔과 부딪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는, 그 말로 버텨보는 하루
‘언젠가는 되겠지.’ 이 말 하나로 나는 지금껏 수없이 많은 절망을 견뎠다. 매번 실패해도 다시 병원에 가고, 주사를 맞고, 몸 상태를 체크하는 건 ‘이번엔 될지도 몰라’라는 작은 희망 때문이다. 이 희망은 지치기도 하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줄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기다려봐.” 하지만 그 기다림이 얼마나 버거운지 모른다. 아무도 내 몸과 마음이 지나온 시간을 모른다. 눈물 흘리는 날보다 꾹 참고 버티는 날이 훨씬 많다. 피검사에서 수치가 0으로 나왔던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용히 눈물흘리던 기억도, 약을 타러 갔던 약국 앞에서 멍하니 서 있던 순간도 여전히 내 안에 깊게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되뇌며 오늘 하루도 버티고 있다. 실패 후에도 또 한 번 시도해 보는 용기, 다시 웃으려 애쓰는 내가 대견하고 안쓰럽다. 아직 좋은 결과는 없지만, 나는 분명히 한 걸음씩 엄마라는 이름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금은 준비 중이지만, 이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언젠가 경험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