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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관 시술 중 친정엄마의 조언, 위로가 됐을까?

by 40대 후반의 시험관 도전기 2025. 6. 21.

시험관 시술 중 친정엄마의 조언, 위로가 됐을까? 인포그래픽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말들이 시간이 지나 진짜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세대차이 속에서도 끝내 마음이 닿는 유일한 사람, 친정엄마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 목차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말들
세대차이, 그러나 마음은 닿아 있었다
시험관의 고통을 공유할 유일한 사람
엄마의 조언이 진짜 위로가 되던 순간

처음엔 부담스러웠던 엄마의 말들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서 가장 민감해지는 건 ‘말 한마디’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친정엄마의 말은 때로 위로보다 부담으로 느껴졌던 적이 많았습니다. “마음 편하게 먹어야지”, “밥 잘 챙겨 먹고 기운 내야지”, “얼른 아기 가져야지”는 말들이 의도는 분명 위로였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내 상황을 가볍게 여기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늘 나의 편이었지만, 시술이라는 예민하고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엄마의 응원조차 가끔은 짐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그래도 다음엔 잘 되겠지”라는 말은 내가 감정을 다 꺼내지도 못했는데 벌써 덮어버리는 듯한 아쉬움을 안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엄마가 계속 곁에서 진심을 담아 전해온 조언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위로가 되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내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이었고, 그 마음을 내가 미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대차이, 그러나 마음은 닿아 있었다

엄마는 나와 같은 길을 걷진 않았습니다. 엄마 세대에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6남매의 자녀를 낳고, 그 흐름대로 살아온 세대입니다. 그래서 엄마에겐 시험관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고, 병원을 오가며 호르몬 주사를 맞는 내 일상을 이해하긴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출산을 한 또래여도 시험관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니깐요 


하지만 엄마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느낀 건, 엄마도 자신의 언어로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이 아는 방식으로 위로하고 있었던 거죠. 아프진 않은지, 병원비는 어떻게 되는지, 혹시라도 몸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그랬던 것뿐이었습니다.

세대차이라는 건 결국 표현 방식의 차이였습니다. 엄마가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며, 새벽마다 딸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격려와 응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은 말보다 더 진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시험관의 고통을 공유할 유일한 사람

시험관 시술은 신체적인 고통 못지않게 정신적인 고통이 큽니다. 매번 병원을 방문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것만 같은 희망.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나마 내 감정을 묵묵히 받아주는 사람이 친정엄마였습니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얘기해도 “그래도 언젠가 되겠지”,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라는 일반적인 위로가 돌아왔지만, 엄마는 달랐습니다. 그저 옆에 있어주고,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고, 내가 울 때 같이 울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엄마는 시술을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딸이 겪는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눈치채고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어떤 위로나 조언보다 더 큰 위안은,  엄마로부터 온전히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엄마는 그걸, 말이 아닌 태도로 보여준 나의 진정한 보호자이었습니다.

엄마의 조언이 진짜 위로가 되던 순간

처음에는 그저 반복적인 조언처럼 들렸던 말들이, 어느 날 문득 마음 깊숙이 와닿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엄마는 네가 웃을 때 제일 좋아" 같은 말은 그동안 무심히 흘려보냈던 말들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그 말들이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나를 오래 본 사람,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나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이 엄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조언들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나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하는 내 곁에서, 엄마는 늘 나보다 더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엄마의 말이 위로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결국 그 말들이 내 마음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진심은 언젠가 통하게 된다는 걸, 엄마가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그럴 때면 하늘을 봅니다. 하늘에서 막내딸을 향해 미소 지으며 응원해 주고 계신 듯합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으로 길러주셨듯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받은 사랑을 전해주고 싶습니다.